41장.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이 보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같이 보이고,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것 같이 보이고.
"도"는 알아보기 어려워, 뛰어난 사람은 도에 대해 들으면 힘써 행하려하나, 보통사람들은 진짜 "도"인지 의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게 무슨 "도"냐며 비웃는다. 도는 상식적인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한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아보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가는 것 같아보이고,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특징이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도"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게 하나, 앞에서도 노자는 계속해서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 역설이 아니며, 순리의 변화 안에서 양립할 수 있는 개념임을 말하고 있다. 또 그러한 개념은 각자의 기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상대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역설적인 것 같은 두 개념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42장.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습니다.
지금까지는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것, 역설적인 상황들이 변화라는 개념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고, 그런 상태가 "도"에 가깝겠구나...라고 생각해왔다. 42장을 보니,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았다고 한다. 하나에서 음, 양의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념이 나온 것이다. 그럼 내가 생각했던 거랑 반대방향으로 생각이 흘러야 하는 건가? 원래 하나인 것에서 두개가 나오고, 셋이 되고, 만물이 되는 것이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념은 하나에서 출발했다. 어떤 한가지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두개의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면 같은 것을 설명하는 데 상반된 개념이 되어버린 두 개념을 보면서, 역시나 "말"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말로 표현된 개념들을 따지고 따지고 따지고 올라가다보면, 말로 설명하려했던 최초의 한가지가 나올텐데...그것이 "도"인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임금이 자신을 "고아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역설처럼 보이지만, "도"에 가까운 행동이라 말하고 있다.
43장.
세상에서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단단한 것을 이깁니다.
'없음'만이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위"가 "인위", "작위"보다 강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부드러운 것이 만물을 포용할 수 있다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43장을 읽을 때, '소오강호'의 영호충의 최강검법 '독고구검'이 생각났다. 그 비밀은 '무초식', 초식이 없다는 것인데, 초식이 없으므로 그 검법을 깰 수 있는 다른 검법도 없다는 것이다. 영호충이 '독고구검'을 연마할 때 스승이 물었다. "다 외웠느냐?" "절반정도 외우고 절반정도 까먹었습니다." 한참 후 다시 연습 후 묻는다. "다 외웠느냐?" "이제 다 잊어버렸습니다." 뭐 김용 작가가 노자를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도가의 사상이 느껴진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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