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일이 없어도 지나가다 서점이 있으면 들렸다 가기도 하는데,
당시 '문해력'에 꽂혀 있었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다보면 항상 어떻게 하면 글을 잘쓸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쓸 수 있을까? 또 방대한 양의 보고서들은 어떻게 짧은 시간에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신간 코너에 이 책이 떡하니 꽂혀 있었는데, '문해력'이 아닌 '몸해력'이었다. 몸해력??? 정확한 제목은 '내 몸을 읽고 쓰는 힘, 몸해력'
원래 장바구니에 있던 힐빌리의 노래 원서(Hillbilly Elegy)를 구매하고, 이 책도 그냥 충동적으로 같이 구매하였다.
내 몸을 읽고 쓰는 힘 몸해력. 2월 14일에 구매하였으니 3개월이 지나서야 이 책을 집어 들었고, 다 읽었다.
결론은 기분좋은 낚임이었다 ㅎㅎ
저자는 요가와 명상으로 하시는 분인가 보다. 그리고 책 내용 중에 스쳐가듯 나오는데, 감이당의 수업도 즐겨 들으시는 것 같다. 감이당의 글쓰기 강좌나 동의보감 강좌 내용이 간혹 언급된다. 감이당의 오창희님 이름도 언급되고 ㅎㅎ
와 닿는 문장들이 많았다.
"자기감정을 알아봐주지 않으니 어머니의 머릿속은 '배은망덕한 아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10년 전 일까지 캐내서 편집 중입니다. 그런 시나리오는 자신에게도 아들에게도 해로울 뿐이지요. '아, 내가 서운해하는구나. 저번에도 그랬고 정말 서운해. 너무 서운하고 속상해. 이런 기분이 너무 싫어. 힘들어.' 이렇게 자기감정을 분명히 알아보고 공감해주어야 다큐멘터리 제작을 멈출 수 있을 거에요. 자신이 잘한다거나 잘못한다거나 아들이 잘했다거나 못했다거나 하는 판단은 우선은 내버려둡시다. 서운하고 서러운 감정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을 안쓰럽게 알아봐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p.143)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당장에는 흥분하고 혼자 앞서나가서 100만개의 시나리오를 쓰고 분해하고, 혼자 마음상해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럴 때마다 내 감정들은 아무 죄도 없이 얼마나 소비당했고, 내 몸과 마음은 혹사당했는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이렇게 서운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마음을 봐주는 것이다.
"20대까지의 재능은 이를테면 어디서 상 받고, 시험에 통과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어른의 재능은 꾸준함입니다."(p.173)
내가 최근에 개인적 일을 통해 느꼈던 것인데, 이 부분을 읽을 때 깜짝 놀랐다.
"안느는 철학교사답게 생각하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에요. 개인적으로든 직업적으로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들은 몸 감각과 단절되기 쉽거든요. 햄을 자르면서도 그 행위에 주의가 머물지 못하고, 말이나 생각으로 주의가 산만해지기 때문이랍니다. 이들은 자신의 손이 칼이나 햄, 도마를 다루는 미세한 감각들을 놓치고, 말이나 떠오른 생각에 주의가 금세 옮겨가고 말아요"(p.180)
맞다. 우리는 무엇이든 한가지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다. 설거지를 하면서 유튜브를 보고, 밥을 먹으면서 티비를 보고... 그러니 지금 행동하는 데에 쓰이는 신체에 대한 감각을 일부러 느끼지 않는 것이고 결국에는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뇌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걸까, 방송을 보는 걸까...얼마나 헷갈릴까...이것은 뇌에게 굉장히 무리를 가하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몸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바람, 숨 쉬면서 오르내리는 배와 어깨의 들썩임, 등받이에 맞닿는 등의 감촉, 오금이 간질간질한 느낌까지 지금 이 몸에는 온갖 감각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 주의할 것은 감각에만 오롯이 주의를 기울일 뿐 이 느낌이 왜 일어났는지 유추하느라 생각에 빠지지 않는 거에요." (p.184)
그냥, 내 몸을 느껴주자. 내 몸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몸이 7년마다 새로 탈바꿈한다, 모든 세포가 7년마다 완전히 교체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7년마다 새 몸, 새 마음이 되는 줄 미처 몰라요.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식)이 과거의 나와 똑같다고 여기며 같은 세포를 복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p229)
띵~ 요즘 계속되는 나의 고민이다.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 과거를 완전히 보내주고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다. 생각도 행동도. 우리는 7년마다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에도 똑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므로 달라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의 세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그 세포에 어떤 사고방식을 넣어줄 것인가. 과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과거와 똑같은 몸이 될 것이다. 과거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나아가야 새롭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너무 공감가는 구절들이 많았어서, 저자의 옛 책들부터 다시 읽어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사과를 먹을 땐 사과를 먹어요'와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을 추가로 구매하였다. '내 몸을 읽고 쓰는 힘, 몸해력', 우연히 충동적으로 구매하였지만, 너무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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