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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떤 사람이 열심히 수행한 끝에 욕심도 짜증도 성냄도 일으키지 않는 경지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키와 몸무게는 얼마고 눈과 귀와 코의 모양은 이러이러하다고 자세히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이 모두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에게 삼십이상의 특징이 존재하지만, 그런 특징들로써 부처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의 몸이 가지는 특징은 상에 불과합니다. 모든 상으로부터 벗어나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치지 않고는 부처를 바로 볼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상상하는 것들에 매달려서는 부처를 보고도 부처인 줄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유명 사찰을 찾고, 기도가 영험하다는 곳을 찾고, 유명한 관세음보살상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기도한다. 물론 이것도 좋지만, 이것은 상에 집착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에 집착해서는 다가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지금 깨달으려 하고, 깨달은 바를 통해 목적없이 다른 사람과 나누려하는 자세야 말로 부처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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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인구가 적은 작은 나라

열가지 백가지 기계가 있으나 쓰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백성이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이사가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고,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내보일 일이 없습니다.

 

노자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백성이 "도"에 따른다면, 누구보다 많이 가지려 할 일이 없고, 이웃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른 채 자급자족 하며, 안분지족의 삶을 살 것이다. 왕이 누군지도 모를테고, 자기가 사는 나라가 대국인지 소국인지도 모를 것이다. 도가적 이상국가인데, 현실 사회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가. 가능성은 적겠지만, 자원 전쟁, 무역 전쟁, 영토 전쟁 등 서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분쟁이 일어나는 현 시대에 이상향이라 할 수는 있겠다.

 

81.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합니다.

선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고, 변론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못하고, 박식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도덕경의 마지막 장이다. 다시 한번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보이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큰 것이 있음을 알고 겸손할 것이며, 상반되어 보이나 원래 하나이니, 인위, 작위, 분별을 멀리하고 순리에 따라 조화로운 삶을 살 것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계획했던 한달보다 일주일 더 걸렸지만, 매일 도덕경 읽기완수하였다.

삶의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기회였고, 막연히 고전이라서 읽어봐야 한다는 추천보다도 훨씬 유익하고 좋은 독서 였다. 이번에 매일 도덕경을 읽고 단상을 쓰면서, 검색을 통해 여러 해석들을 참고하기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웨인 다이어"가 해석한 "도덕경"인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의 해석이 참 와닿았었다.

이 책 또한 구매를 하였고, 이어서 읽어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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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왕이여, 불도란 쉽고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도 얻을 수 있지만, 수천의 보시로도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불도를 얻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여 만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푸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보시하고 선행을 쌓으며 스스로 겸손해 남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자기가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닦으면 뒷날에 언젠가는 부처가 될 것입니다.

 

하나의 보시로도 얻을 수 있지만, 수천의 보시로도 얻지 못하기도 한다. 보시의 양보다 상에 기대지 않는 무주상보시의 공덕이 가장 큼을 말씀하고 있다.

 

12.

'집착 없이 마음을 내라고 했는데 내가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해서 그렇게 안되니까 나을 돕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그저 주저앉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의 목적은 남을 돕는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흔들림 없는 참자유 참행복을 누리기 위해 수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는 참뜻을 바르게 알았다면, 완전한 자유와 행복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뿐입니다.

 

보시를 함에 있어, 남을 돕는다는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나온 것임을 알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곧 나를 돕는 것이니, 누군가를 위해 돕는다는 생각이 없고, 그저 무심히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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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한근태의 독서 일기 등 전에도 한근태님의 책들을 인상깊게 읽었었고, 새로 나온 저자의 신간을 구매하였다.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질문과 얽힌 본인의 업무적 경험 등 여러 사례를 얘기하고 있다.

 

질문이 곧 답이다. 질문은 이미 그 안에 답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질문을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어려운 점은 좋은 질문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해야하고, 또 그것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통찰력 있고,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독(多讀)을 그 해답으로 제시한다.

 

알아야 질문을 한다. 제대로 알아야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안다는 것이 뭘까? 안다는 것과 익숙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 오래 일한 것, 많이 주워들은 걸 안다고 착각한다. 그 동네에 오래 산다고 그 동네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는 것이란 전문성을 넘어 통찰력의 단계까지 진화한 것을 뜻한다. 업의 본질은 물론 자신이 속한 사회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자기 분야만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 역사적 지식,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춘 것을 뜻한다.

 

ㅋㅋ보통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질문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 저자는 그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고 한다.ㅋㅋ 저자가 말하는 "질문"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현재의 불만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막힌 곳을 뚫어줄 송곳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에 근거하여 나를 채우는 질문, 관계를 잇는 질문, 일의 방향을 정하는 질문, 리더를 위한 질문 등 4가지로 분류하여 좋은 질문에 대해 제시한다.

 

내가 주로 감명 깊게 읽은 질문들은 주로 회사, 업무에 관한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불평불만이 많았다. 뭔가 일이 생기면 비분강개하면서 핏대를 올렸다. 그런데그런 것이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작 내가 화내고 있는 대상은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몰랐고, 괜히 나만 기분이 나빠졌다. 어느날은 화를 내는 대신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도 나왔다. 배우는 것도 많았다. 흔히 사람들은 직장 상사 욕을 많이 한다. 이때도 난 거꾸로 '내가 만약 상사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자주 생각한다. 뭔가 일이 생길 때 비난 대신 '나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질문해보라. 그러면 상대방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배우는 게 많아진다.

 

일할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일까지 추가로 하려니 짜증이 났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내 시간을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은 결코 가치없이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런 시간들이 축적되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깨달음이 없었다. 당시 누군가 힘들어하는 내게 "지금 하는 일이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나요? 이 일을 통해 배우는 건 없나요?"란 질문을 던졌다면 어땠을까? 분명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같은 강의도 훨씬 즐겁게 했을 것이다.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불평 중 하나는 "회사에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비전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일 안에서 찾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보라. 지금의 일이 이력서에 한 줄 보탤 수 있는 일인지, 5년 후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할 것 같은지, 미래에 이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할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팀장에 대한 불만, 잡무, 회사의 비전 등 뜨끔한 내용들이다.ㅎㅎ

현재의 불만인 상황의 새로운 측면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환의 계기가 필요한데, 그것을 "질문"을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현재 처리하는 업무의 핵심을 찌르고, 또한 리더로서 부하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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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것 세상 사람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또 낮은 곳으로 위치하려 할 뿐이지만, 단단한 바위를 깎고, 모든 것을 다 품고 아래로 아래로 흐를 뿐이다. 이렇게 부드럽고 낮은 데에 위치하려 하는 물이 단단하고 힘센 것들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백성들을 통치하고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물처럼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여 온갖 궂은 일을 떠맡아야 할텐데 그것이 쉽지 않으며, 실제로 그런 지도자 역시 드물다.

 

79.

깊은 원한은 화해하더라도 여한이 남는 법입니다. 이것이 어찌 잘된 일이라 하겠습니까?

하늘의 도는 편애하는 일이 없이 그저 언제나 선한 사람의 편에 설 따름입니다.

 

원한을 사게 되면 화해를 하더라도 그 원한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따라서 "도"의 관점에서 원한 살 일 역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므로 그저 낮추고, 부드럽게 포용하여, 남의 허물을 자기 것으로 감수하는 "자애"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노자는 이를 성인은 스스로를 빚진 자, 즉 채무자의 입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친 말을 하거나 원한살 일이 없다고 한다. 하늘은 그저 순리, 도의 원리에 따를 뿐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뜻에 내 뜻을 맞추고 물처럼 하늘의 길에 내 발걸음을 맞추기 위한 자기 낮춤, 자기 비움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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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기란 어떤 법을 받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깨달음의 약속입니다.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니듯이 공기와 물과 흙 또한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집도 차도 사람도 그 누구의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쓰일 뿐이니 누가 쓴다 해도 인연에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보살은 그런 마음으로 분별심없이 불국토를 장엄합니다.

 

상을 깨고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생기든지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더러움과 대립하는 깨끗함, 악에 대립하는 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상도 짓지 않고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걸림없는 마음, 육근 경계에 머문 바 없는 마음을 청정한 마음이라고 이름 지어 부를 뿐입니다.

 

더러움과 깨끗함, 악과 선,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이 같은 하나에서 나왔음을 알고,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마음을 머문 바 없이 대하라는 뜻인 것 같다.

 

크다는 실체도 작다는 실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크다고도 하고 작다고도 합니다. 다만 인연에 따라서 크다고 이름할 뿐이고 작다고 이름할 뿐입니다. 이렇듯 고정불변의 절대적 기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구분은 인연을 따라서 나타났다 인연을 따라 사라지는 상대적 현상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인 것이니, 욕심내거나 화내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 같다.

 

금강경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는 정말 깜짝 놀랄만큼 도덕경에서 말하는 바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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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백성이 굶주리는 것, 윗사람이 세금을 너무 많이 받아 먹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굶주리는 것입니다.

 

노자님이 살던 이천년전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곳은 다 같은가 보다. 그러니 그 시절 노자, 공자 등 성현들의 말씀이 아직도 유효한 것이겠지. 지배층의 인위적인 행동들이 백성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불러옴을 경계하고 있다. 오강남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고 계시다.

위정자가 성을 쌓는다, 왕궁을 건립한다, 도로를 낸다, 운하를 판다,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한다, 뭐를 한다 하면서 계속 부산을 떨거나 법령을 만든다, 제도를 재정비한다, 뭣을 개혁한다 하면서 백성을 부역이다 군역이다 복역이다 등등 인위적인 다스림으로 못 살게 하니까 자연히 저항하고 반항하고 도피하고, 그래서 다스리기가 힘들어진다.

그렇다면 순리에 따르면 나라가 다 잘 될 것이라 말하고 계신데, 순리에 따르는 지배는 어떤 것인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놔두는 것인가? 도에 의한 다스림은 어떤 것일까...

 

76.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집니다.

온갖 것, 풀과 나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 뻣뻣해집니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삶의 무리입니다.

 

완강함, 인위, 작위, 고집, 불통 등이 결코 유연함, 겸손, 양보 등을 이길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인위, 작위는 순리에 따르는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77.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높은 쪽은 누르고 낮은 쪽은 올립니다. 남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보태 줍니다.

 

즉, 도는 순환을 통해 균형을 찾아간다. 인간의 삶 역시 남는 것을 통해 부족한 곳을 채우고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도"를 따르는 삶인 것이다. 순환을 통해 다 돌고 도는 것이니, 지금의 모습에 연연해 할 것도, 아까워 할 것도 없이 다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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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수다원

예류에 든 사람이라면 잠시 어리석음에 휘둘려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서 바른 길로 되돌아옵니다. 화를 냈다가도 아집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차리고, 욕심을 냈다가도 그것이 자기 욕심임을 알아차리고, 꿈을 꾸다가도 그것이 꿈인 줄 알아차립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행동과 말들, 즉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죽음의 길인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지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아차려야 한다.

 

사다함

사람들은 대게 감정이 나타나기 전에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지나가는 느낌을 감지하지 못하는데, 그 느낌은 바로 쾌 또는 불쾌, 또는 쾌도 아니고 불쾌도 아닌 경우입니다. 이러한 쾌와 불쾌에 따라서 하고 싶다는 욕망이나 하기 싫다는 혐오가 일어납니다. 그 마음을 愛라고 합니다. 애가 일어 났을 때, 하고 싶다든가 하기 싫다는 욕망에 끌려가면 그 욕망을 따라 행동하게 되고, 그 행동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이렇게 해서 어리석은 삶이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서 쾌와 불쾌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면 업식이 경계에 반응은 하되 새로운 욕망을 일으키지는 않게 됩니다.

 

쾌와 불쾌가 일어나는 순간에 좋거나 싫다는 반응을 하지 말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돈을 못 벌었다고 우는 사람이나, 권력 못 잡았다고 우는 사람이나, 명예를 못 얻었다고 우는 사람이나, 도를 못 얻어서 우는 사람이나 상에 집착해서 생기는 괴로움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을 짓고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상을 내려놓으면 동산이라는 말을 들어도 다툼이 없고 서산이라는 말을 들어도 다툼이 없습니다. 동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가 서쪽에 사는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서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가 동쪽에 사는 사람임을 알아차리니 다툴 일이 없습니다.

하나의 상을 지으면 저절로 두 개의 상이 됩니다. 깨끗하다는 상을 지으면 반드시 그 옆에 더럽다는 상이 생기고, 선하다는 상을 세우면 그 옆에 저절로 악하다는 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두 개의 상이 생긴다는 것은 만 개의 상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실상은 만 가지 상이 다 일상으로부터 일어난 것인데 그 일상마저도 없다는 무상인 것입니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념이 하나의 상에서 나온다는 사실, 또한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개념들.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였으며, 더 나아가 그 하나조차도 없다는 무상의 경지가 바로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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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장.

하늘의 도는 겨루지 않고도 훌륭히 이기는 것이고, 말하지 않고도 훌륭히 응답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고, 느슨하면서도 훌륭히 꾸미는 것입니다.

하늘의 그물은 광대하여 엉성한 것 같지만 놓치는 일이 없습니다.

 

오강남 선생님의 풀이가 마음에 꼭 와닿는다.

우리의 제한된 생각으로는 당장 뭔가 설치면서 저돌적으로 나가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고, 비폭력주의 같은 소극적 대처 방안에 따라 처신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할 것처럼 보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하늘이 그렇게 엉성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의 잘잘못을 가지고 당장 너무 조급하게 반응하지 말라. 결국은 하늘의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이라는 하늘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물은 물대로 간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뭔가 억지로 꾸역꾸역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있다. 끈기로 열심히 한다는 느낌보다, 자기 중심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당장 눈 앞의 기회를 잡지만, 끝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한 것을 경계하는 말씀 같다.

 

74장.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죽음으로 그들을 위협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하고 이상스런 짓을 하는 자가 있어 내가 그를 잡아 죽인다 하면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충신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반역을 한 후 충신들을 붙잡거나, 전쟁을 한 후 망국의 충신들을 붙잡아 충성을 강요하는 모습.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신들에게는 그런 강요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순리에 따르지 않고, 충신을 죽인 정권은 더 큰 반란이나 비판 여론에 직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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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속박의 끈을 더 단단히 조여 맨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누에가 제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고 그 속에 갇히듯, 내가 일으킨 생각에 사로 잡혀 스스로를 구속합니다. 고정관념으로 만들어진 온갖 상을 깨뜨리면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와 창공을 훨훨 날듯 내 앞에 자유로운 세상이 활짝 펼쳐집니다.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살며, 배우고, 익히는 것들이 오히려 나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 언제든 다 내려놓고 무에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는 이 세상에 한 물건도 본래 내 것 네 것이 없다는 것을 중득한 사람입니다. 무소유, 무소아이므로 더 이상 주고 받는다는 생각이 없고 다만 필요에 따라 쓰일 뿐이지요.

 

모든 것이 하나에서 나와, 구별이 없는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듯 인연따라 그때그때 바뀌어야 문제가 없습니다. 인연 따라 사는 삶이 집착이 없는 삶이고, 그것이 바로 무위의 삶입니다.

 

내가 난데...라는 마음을 버리고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8.

지금 내것이라고 믿는 것은 잠시 내 손에 머물러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누구에게 얼마만큼 내준다 해도 그것은 나의 공덕이 아닙니다. 본래 이 물건이 누구의 것이 아닌 줄을 알면 이것을 누구에게 보시한다고 해도 아무런 공덕을 지은 바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원래 다 하나에서 나왔음을 알면 무주상보시를 할 수 있게 된다.

 

옳고 그름 역시 그러습니다. 다만 인연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속에서 잠시 형상을 갖추고 나타나는 것이지, 옳다 그르다 할 본래의 성품이 없습니다.

 

지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는 것이니, 알고 있는 지식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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