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다원

예류에 든 사람이라면 잠시 어리석음에 휘둘려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서 바른 길로 되돌아옵니다. 화를 냈다가도 아집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차리고, 욕심을 냈다가도 그것이 자기 욕심임을 알아차리고, 꿈을 꾸다가도 그것이 꿈인 줄 알아차립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행동과 말들, 즉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죽음의 길인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지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아차려야 한다.

 

사다함

사람들은 대게 감정이 나타나기 전에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지나가는 느낌을 감지하지 못하는데, 그 느낌은 바로 쾌 또는 불쾌, 또는 쾌도 아니고 불쾌도 아닌 경우입니다. 이러한 쾌와 불쾌에 따라서 하고 싶다는 욕망이나 하기 싫다는 혐오가 일어납니다. 그 마음을 愛라고 합니다. 애가 일어 났을 때, 하고 싶다든가 하기 싫다는 욕망에 끌려가면 그 욕망을 따라 행동하게 되고, 그 행동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이렇게 해서 어리석은 삶이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서 쾌와 불쾌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면 업식이 경계에 반응은 하되 새로운 욕망을 일으키지는 않게 됩니다.

 

쾌와 불쾌가 일어나는 순간에 좋거나 싫다는 반응을 하지 말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돈을 못 벌었다고 우는 사람이나, 권력 못 잡았다고 우는 사람이나, 명예를 못 얻었다고 우는 사람이나, 도를 못 얻어서 우는 사람이나 상에 집착해서 생기는 괴로움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을 짓고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상을 내려놓으면 동산이라는 말을 들어도 다툼이 없고 서산이라는 말을 들어도 다툼이 없습니다. 동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가 서쪽에 사는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서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가 동쪽에 사는 사람임을 알아차리니 다툴 일이 없습니다.

하나의 상을 지으면 저절로 두 개의 상이 됩니다. 깨끗하다는 상을 지으면 반드시 그 옆에 더럽다는 상이 생기고, 선하다는 상을 세우면 그 옆에 저절로 악하다는 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두 개의 상이 생긴다는 것은 만 개의 상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실상은 만 가지 상이 다 일상으로부터 일어난 것인데 그 일상마저도 없다는 무상인 것입니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념이 하나의 상에서 나온다는 사실, 또한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개념들.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였으며, 더 나아가 그 하나조차도 없다는 무상의 경지가 바로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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