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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가볍게 처신하면 그 그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행동하면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종일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다 화려한 경관을 보았을 때, 짐을 내려두고 풍경에 심취할 것이다. 그러나 성인은 무거운 짐수레나 화려한 경관이나 어떤 선호가 없이 의연하고 초연할 뿐이다. 경관이더라도, 짐을 짊어진 채, 보이는 대로 바라보고 즐길 뿐이지, 애써 더 자세히 보려 짐을 내려 놓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 역시 나라 곳곳의 모든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의연하고 초연해야 17장에서 말한 존재정도만 알려진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모든 현상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면, 의연하고 초연할 수 있고, 성급하거나 가볍게 처신하지 않게 된다.

 

27장.

정말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린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달린 자국, 흠이나 티, 계산기, 빗장, 졸라매기 등은 인위로 더 잘해보려 노력한 흔적들이다. 성인은 이런 인위가 없으므로 그 행동 자체가 "도"에 가깝게 되고,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차별없이 초연하게 대할 뿐이다. 즉 선함이 선하지 못함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두 개념의 우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차별한 것임을 안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ㅜㅜ 그래도 이렇게 뜻깊은 글귀를 매일 읽고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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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입니다.

 

5장에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인식 자체도 부족하지만,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 많은 제한을 갖고 있음인데...결국 말을 할수록 더 부족해지게 되고, 한(限)이 없는 지혜인 도와 멀어지게 된다는 것 같다.

 

24장.

발끝으로 서는 사람은 단단히 설 수 없고

 

발끝으로 선다거나 다리를 너무 벌리고 걷는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작위적인 행동이다. 이런 작위로 인해 단단히 설 수 없고, 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뽐내려 하고, 자랑하려 하는 태도는 더욱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요즘은 정말이지 너무 피곤하다. 갑의 위치에선 갑질한다고 민원들어올까봐 마음 졸이고, 을의 위치에선 갑한테 찍힐까봐 마음 졸이고... 아무것에도 비교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소박하고, 충실하게 묵묵히 살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자연스러우면, 무엇에도 거침이 없게 된다.

 

25장.

나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도'라고 불러 봅니다.

 

분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노자가 경계시하고 있는 이분법적인 인식에 대한 반대적인 표현으로서 조화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만물의 시원이며, 감각으로는 인식할 수 없으며, 제한이 없이 거침없고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도"라는 개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나 굳이 표현하여 "도"라 부르는 것이고, 그 성질을 설명하자면 크다. 말로는 언제나 한계가 있는 법, 크다는 말로서 "도"를 표현하기에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 큰 것은 도, 하늘, 땅, 임금 이렇게 4개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땅을,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크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 자연스러움을 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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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세상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홀로 아리송하고, 세상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홀로 맹맹합니다.

 

오강남 선생님께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바를 정확히 표현해주셨다. 이분법적 상식의 세계를 초월한 "초이분법적 의식세계", 그리고 그 경지에 달한 사람들의 "실존적 고독". ㅋㅋ뭔가 엄청 어려운 단어다 ㅋㅋ 그리고 계속하여 갓난 아기 비유가 등장하는데, 세상에 태어나 눈, 코, 입, 귀, 촉을 통해 습득하는 작은 지혜들로 인한 편견이 없이, 즉 이분법적 상식을 가지고 있지 않던 갓난 아기시절을 강조하는 것 같다.

 

21장.

황홀하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습니다.

황홀하기 그지 없지만 그 안에 질료가 있습니다.

그윽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 알맹이가 있습니다.

 

21장은 너무 어려웠다. 오강남 선생님 해설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웠고, 다른 검색을 해보니, 황홀(恍惚)이란 단어의 해석에서 많은 차이가 생겨나는 것 같다. 오강남 선생님은 말그대로 ecstatic, 우리가 황홀하다고 말할 때, 그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여 해석하셨고, 어떤 분들은 恍(어슴프레하다, 흐릿하다), 惚(희미하다, 모호하다) 의 뜻으로 해석하여 황홀을 "모호하다"란 의미로 해석하였다. 이 경우 해석이 더 쉽게 된다. 모호하지만 형상이 있고, 질료가 있고, 알맹이가 있다는 것이다. 도는 감각에만 의지하면 없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으나, "예부터 이제까지 이름이 없은 적 없다." 즉, 실재한다.

 

22장.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오강남 선생님 풀이대로, "휘어짐"과 "온전함", "굽음"과 "곧음", "파임"과 "채움", 헐다"와 "새롭다", "적음"과 "많음"이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통해 두 개념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인은 치우치지 않고 사물을 "하나"로 파악하므로 "세상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대립되어 보이는 개념들이 하나이고, 양립가능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 같다.

 

ㅋㅋ일독과 이독을 읽은 후, 요즘 또콩이한테 "논어"를 한 줄씩 읽어주는데, 이런 내용이 나왔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지어다(, , , .)"

물론 노자와 공자가 말한 도는 완벽히 같지 않겠지만.. 공자님도 "도"를 중요시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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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재미있는 장이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무위의 치를 하는 지도자, 즉 도가적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인의 정치, 덕치주의, 유가적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법치주의 법가적 지도자, 가장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라고 말한다. 경제학을 공부한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재미가 있다. 고전학파가 늘 말하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항상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시장실패를 빌미로 정부가 개입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케인즈학파도 있지만, 고전학파는 여전히, 정부의 개입은 시장실패를 더욱 악화시켜 오히려 정부실패를 가져올 뿐이라 말한다. 그들은 도덕경을 읽었던 것일까 ㅎㅎ

 

18장.

대도가 폐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나서고, 지략이니 지모니 하는 것이 설치면 엄청난 위선이 만연하게 됩니다.

 

앞서서 고저, 미추, 장단 등의 개념이 상대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계들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 사회관계에서 도와 인, 지략과 위선, 가족관계내에서 효와 자 등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19장.

물들이지 않은 명주의 순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절박함을 품는 것.

 

성스런 체함, 인과 의, 재간부리기와 이보려는 마음은 모두 작위를 뜻한다. 이런 작위를 버리고 무위의 상태에 있을 때 "도"가 회복된다. 하얀 명주에 굳이 염색을 할 필요가 있는가, 통나무를 다듬을 필요가 있는가, 있는 그대로의 것에 작위를 가하려는 "나"의 생각을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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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

 

보이고 들리고 잡히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까지 혼연일체를 이룬 것이 도이므로, 보이고 들리고 잡히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까지 인식하려 해야 한다.

 

15장.

도를 체득한 사람은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드러난 모습만을 본다면,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고 어려워하고 맺힘이 없고 소박하고 트이고 탁하지만,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 본다면, 열린 마음, 겸허, 자유분방, 진솔함을 갖춘 모습이다.

 

16장.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영원한 것을 안다...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주적 원리에 따라 근원에서 생기고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니, 순간적인 시각에서 작위를 하지 말것이며, 모든 작위를 비우고 우주적 원리에 따를 때 도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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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이는 부분 말고도 더 큰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그 부분에 대해 알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12장.

다섯까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게 되고

 

색, 소리, 맛 등 감각적이고 외면적인 것들이 우리가 진짜로 보아야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인식을 멀게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보고 인식해야하는데, 보이는 것에 너무 치중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인 것 같다.

 

13장.

수모를 신기한 것처럼 좋아하고, 고난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십시오.

 

수모와 고난은 보기에는 괴롭고 안 좋아서 피하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본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수모를 당하는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낮은 곳에 위치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수모와 고난은 스스로를 살피고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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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일이 이루어졌으면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입니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필요도 없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할 따름이다. 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라. 그래서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물러남이 있을 때 새로 들어옴이 있다. 이것이 하늘의 길이라는 것이다.

넘칠만큼 찼을 때, 비우는 것, 적당히 채우는 것 조차 작위아닌가? 점점 차고 넘치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모두 자연스러운 흐름이니 의연하라는 것 아닌지.

 

10장.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않고

 

엄마로부터 갓 떨어져 나와 오로지 호흡이 모든 것인양 숨쉬는 것에 온 힘을 쓰는 걸처럼 보이는 갓난아기가 생각났다. 그 이후 자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머릿속에 생각, 지식, 편견이 많아지고 점점 의식은 호흡에서 멀어진다. 이런 편견을 다시 극복하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게 되라. 포용한다고 의식하는 것이 아니고, 편견을 극복하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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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자기를 앞세우지 않기에 앞서게 되고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를 보존합니다. 자기를 버린다. 자기 부정. 현재 보이는 자기 자신, 물질, 재화를 소유한 모습, 어떤 학력을 갖춘 모습, 사회적 지위 등 보이는 자기 자신을 버린다. 그릇에 물이 차있으면 그릇을 비워야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것을 늘 고려하고,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또 비우면서 자연스레 변해가야 참 나인 자기를 보존할 수 있다.


8장.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


물은 어떤 작위도 하지 않는다. 본래 성질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유유히 흐를 뿐이다. 물은 노력하지도 않았으나, 이 세상에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물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본성, 우주적 원리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흘렀을 뿐인데, 세상은 그러한 물에 맞추어 진화해왔다. 사람이 입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물을 마시고, 물을 아래로 흐르면서 각 신체부위에 흡수될 노폐물을 껴안아 밑으로 나오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본성에 충실할 뿐이었는데, 세상은 물에 모든 것을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 도의 힘. 이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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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도는 그릇처럼 비어 그 쓰임에 차고 넘치는 일이 없습니다.

 

도는 그 크기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개념으로 우주 삼라만상에 작용한다. 날카롭거나 무딘 것이나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본다면 다 하나인 것이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조화시킨다고 볼 수도 있다.

 

5장.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도는 삼라만상에 작용하여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눈에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으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말을 조심하라. 말로 구하려 하지말고 체험을 통해,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하라.

(+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위로 가득 차 있다. 무위로 가득 차 틀이 없는 다함이 없는 공간에서 자연스러움이 가능하나, 그런 줄 모르고, 움직이게 되면, 무위가 아닌 위를 하게 되면, 더욱 더 많은 무위가 아닌 위가 개입되게 되고, 자연이 깨지게 된다. 위...개념, 지식의 제한된 표현, 한정된 부분일 수 밖에 없는 말을 조심하라. 

 

 

6장.

그것은 신비의 여인.

 

모든 것을 낳고, 모든 것을 영속시키는 어머니같은 것.

 

3장씩 읽으면 부담없이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어렵다. 지금까지 읽은 6개의 장에 의하면 이렇게 문자로서 깨달으려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인데, 나는 오히려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헛수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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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매일 3장씩, 8월 한달동안 도덕경완독해 볼 계획이다.

 

1장.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이것이 "도"라고 정의하는 그 사람이 천지-역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어떻게 그것이 영원한 "도"라 할 수 있는가. 생각을 통해 정의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하늘과 땅의 시원이 될 수 없고, 생각을 통해 정의한 그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로 파생된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정의하려는 욕심을 버리면, 자신이 보고 있는 것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가지는 원래 하나인 것이다.

 

2장.

높고 낮음도 서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

 

눈에 보이는 선악, 미추, 고저, 장단이 모두 상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다면, 이 개념들은 반대, 모순이 아닌 태극문양처럼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것들이다. 따라서 성인은 무언가를 함에 있어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행동은 자연스럽다. 초월적 자세.

 

3장.

억지로 하는 함이 없으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알고 다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 부딪힘이 없다. 성인이 다스리면 자연스러운 치가 되니, 사람들은 자연스러워진다.

 

어렵다 ㅋㅋㅋ 일단 완독 후, 한달 동안의 생각의 변화를 살펴 보고, 2회독에 도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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