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여기 하얀 기둥이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붉은색 안경을 낀 사람은 기둥이 붉다고 믿습니다. 또 푸른색 안경을 낀 사람이라면 푸른색이라고 믿을 겁니다. 그 두사람이 만나면 서로 기둥이 빨간색이니 푸른색이니 하고 다툴게 뻔합니다. 이게 상을 짓고 상에 집착하는 중생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집착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을 실제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눈에 빨갛게 보이듯이 그의 눈에는 파랗게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렵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그저 보이는 상일 뿐이라니. 그리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처럼 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가 '상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상을 하나 더 보태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시다. 어렵다.
32.
내가 상대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준다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 그 대가를 바라게 되고, 바라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깁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생각에 좋아 보이는 걸 해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갈등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내 보기에 좋은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이런 이치를 공부하고도 막상 일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에 집착하고, 귀에 들리는 소리에 집착하고, 코에 맡아지는 냄새에 집착하고, 혀에 닿는 맛에 집착하고, 손에 느껴지는 감촉에 집착하고, 머리로 인식되는 알음알이에 집착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제는 그만 '눈 뜨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꿈속에서 아무리 좋은 일이 있었더라도 눈을 떠 보면 다 꿈일 뿐입니다. 좋은 일도 다 꿈같은 줄 안다면 나쁜 일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렇게 금강경을 완독하였다.
8월 24일에 시작하여 한달이 조금 넘게 걸렸다.
불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경전 안에는 철학 이상의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내용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도덕경을 먼저 시도하였는데, 두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상당히 유사하다. 도덕경도 금강경도 다른 분들께서 해석한 책들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도덕경은 서양의 시각으로 해석한 웨인 다이어의 해설 본을 구입하였고, 금강경은 도올 선생님의 해설 본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다시 여러 번 읽어 보고 싶고, 그래야만 더더욱 나를 갈고 닦고, 처음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책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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