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물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그 형태가 바뀝니다. 스스로 어떤 모양이 되겠다는 아무런 의지도 작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텅 비어 있는 그릇은 거기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그 인연에 조응해서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됩니다. 그와 같이 여래는 모든 욕구를 여의었으니, 그 행은 물과 같고 그릇과 같은 무위의 행입니다.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으므로 행함없이 행하는 무소행無所行을 실천하고 무위의 모습으로 무주상보시를 행하여 무루복을 짓습니다.

 

그 뒤로 수행자들은 분소의를 빨아서 입게 되었습니다. 그냥은 더러워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어서 깨끗하게 빨아 입는 게 아니라 인연에 따라 쓰임이 더 적절하도록 빨아서 입기로 한 것입니다. 그처럼 '이래야 된다'라고 고집할 바가 없기에 분별이 끊어진 상태에서 인연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집착하지 않고, 분별을 버리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인연따라 순리에 따라 나를 흘러가게 끔 놓아두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땐 화난 대로,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거기에 빠져들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파도가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듯이 내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야 된다, 이런 마음은 일어나면 안 된다, 그런 관념을 내려놓고 '지금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지켜보면 마음의 움직임에 꺼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냥 나의 감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감정에 반응하지 말고.

 

30.

모두 같은 것을 근본으로 하여 다른 것이 되며, 하나를 근본으로 해서 하나가 아닌 것이 나타나는 이치입니다. 근본 이치에서 본다면 본래 같은 것도 없고 다른 것도 없습니다.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이름일 뿐이지, 같거나 다르다고 할 만한 본질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존재에서 서로 다른 많은 존재가 나오고, 서로 다른 많은 존재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하나로부터 많은 것이 나오고 많은 것으로부터 하나가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 아닌 것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모든 것이 아닌 것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다, 둘이다 하는 구분은 다만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와 둘을 판단할 만한 실체는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면 실체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 실체없이 텅 비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 아무 실체없이 텅 비어 잇는 것처럼 보이는 거기로부터 온갖 현상이 모습을 드러냄을 알게 됩니다. 티끌은 주변 세계와의 연관속에서 그때그때 다른 성질을 드러내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물질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속을 보면 텅...비어 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는 욕심, 집착, 감정을 느끼고 번뇌한다.

 

내가 지금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집니다. 주변 조건에 매달려서 사느냐, 아니면 내가 처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느냐의 선택은 순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늘 나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나는 그대로 두고 밖을 바꾸겠다고 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떻게 반응할지, 어떻게 대처할지,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고, 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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