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상에 집착해 실상을 보지 못하고 진실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 속에서 진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릇된 견해일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이 점을 놓치지 말고 바르게 판단하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돌이켜 보면, 나보다 아랫사람,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의 현 상황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태클을 걸 때면, 그게 옳은 말이라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더 화내고 일부러 더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상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좀 더 나은 길로 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욕심이 아니라 원願을 품은 사람은 바라는 바를 이루려고 노력하되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 실패했을 때 낙담하지 않고 다시 노력하고, 또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노력하고, 다만 그렇게 계속할 뿐입니다. 그러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다른 일을 합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누린 즐거움과 행복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이 아닌 욕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형상에 집착합니다. 또 그럴수록 깨달음의 길은 점점 더 멀어집니다.

 

욕심과 원의 차이..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 자세의 차이만은 알 것 같다.

 

27.

부와 명예와 가족과 친구는 고통의 원인도 아니고 행복의 원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그 속을 헤매며 한 극단과 다른 극단을 왔다갔다합니다. 행복의 원인이라고 했다가 그게 잘 안되면 고통의 원인이라고 했다가, 그렇게 평생을 헤매며 삽니다. 이것이라는 상이든 이것이 아니라는 상이든, 그렇게 그 속을 오락가락해서는 인생의 괴로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일체 법이 무아'라는 것과 '일체 법이 없다'는 것은 그 뜻이 전혀 다릅니다. 그 둘을 혼동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약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실은 그 안에 약이라는 실체나 근원이 있지는 않습니다. 약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은 이것이 독이라는 뜻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도 아닙니다.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영원불멸하는 고정된 성품이나 역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정한 조건과 인연 속에서 때로는 약성으로 작용하고 때로는 독성으로 작용하는 것이 참 모습입니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의 쓰임에 따라 약이라 불릴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이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동시에, 놓인 상황과 인연에 딸서는 '이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만 '이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정한 조건과 인연 속에서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작용하고 이름지어질 뿐, 그 이름에는 고정된 성품이나 역할이 없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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