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있음'이 있으면 '없음'이 있게 마련이다. 또 '있음' 이전의 그 '없음'이 아직 있기 이전이 있어야 한다. 또 없음이 아직 있기 이전이 아직 있기 이전, 그것이 아직 있기 이전의 없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데 갑자기 있음과 없음의 구별이 생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18. 모든 것이 원래 하나인데 달리 무엇을 더 말하겠느냐? ... 이처럼 계속 뻗어가면 아무리 셈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그 끝을 따라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야 일러 무엇하겠나?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아가도 이처럼 금방 셋이 되는데, 하물며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아갈 때야 일러 무엇하겠나? 그러니 부산하게 좇아 다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고 받아들이자.

 

무언가에 대해 언어로써 정의한 순간, 그것은 큰 도로부터 분리되어 "그것"과 "그것이 아닌 것"이 생기게 된다. 다시 이 개념들은 무수히 확장하게 된다. 이렇게 구분하고 따지고 시비를 가리면서 "부산하게 쫓아다니지 말고", 그것을 넘어서 직관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고 받아들이자. 사실 원래 다 하나였으므로.

 

19. 사실 도에는 경계가 없고 말에는 실재가 없다. 말 때문에 분별이 생겨나는데 이 분별에 대해 말해 보기로 하자.

 

20. 무릇 위대한 도는 이름이 없다. 위대한 변론은 말이 없다. 위대한 인은 편애하지 않으며, 위대한 겸손은 밖으로 드러내는 겸양이 아니다. 위대한 용기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 이 다섯가지는 본래 둥근 것이지만 잘못하면 모가 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함을 알고 멈출 줄 아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결국 말은 분별을 일으킬 뿐, 무언가를 정의하는 데에 완전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결국 도에 대해서 말하려면 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22. ...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23. 모장이나 여희는 남자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 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아름다움을 바르게 안다고 하겠는가?

내가 보기에, 인의의 시작이나 시비의 길 따위의 것은 겨룩 이처럼 주관적 판단 기준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번잡하고 혼란한데 내 어찌 이런 것이나 따지고 앉아 있겠는가?

 

우리가 만든 개념들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의와 시비 또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환경과 상황에서 형성된 임의적, 주관적 규범이지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24. 지인至人은 이로움이니 해로움이니 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까? ... 그에게는 삶과 죽음마저 상관이 없는데, 하물며 이로움이니 해로움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지인은 절대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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