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와 네가 연기된  하나의 몸임을 알고 내가 너를 제도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 거기에는 교화한다는 생각도 없고 제도한다는 생각도 없고 바라는 마음도 없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머무를 데가 없습니다. 발에 가시가 박혔을 때 머리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입이 '아야!' 소리를 내고, 눈이 가서 살펴보고, 손이 가시를 골라 빼내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과 나를 구분하지 않으므로 중생의 문제가 곧 내 문제니 다만 스스로 행할 따르입니다.

 

마치 한 몸처럼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면 되는 것이다.

 

만약 더러움의 씨앗, 깨끗함의 씨앗이 존재한다면 더러움은 언제나 더러움에만 머물러야 하고 깨끗함은 늘 깨끗함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더럽다고 할 본질도 깨끗하다고 할 본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하가 손가락질하던 유녀들도 청정한 수행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갖가지 관념의 벽, 분별의 다리가 끊어질 때만이 맑고 투명한 지혜의 눈이 열리고, 비로소 그때 진정한 여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래는 지혜의 눈으로 보는 존재의 참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본래 자기 모양이 없습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그때그때 모습이 바뀌므로 어떤 대상과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막으면 고이고, 차면 넘치고, 이쪽을 막으면 저쪽으로 흐르고, 사방이 막히면 조용히 기다립니다. 이러한 물의 모습이야말로 자기 모양을 갖지 않는 전형이라 할 만합니다.

규정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풀어버리는 것이 상을 떠나는 길, 모양을 떠나는 길입니다. 마음이 물처럼 흘러갈 때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상이 상이 아님을 알 때 깨달음을 얻는 이치입니다. 제상이 구족하다는 가르침은 구족하다고 규정할 기준이 본래 없다는 뜻이며, 고정된 상이 본래 없으므로 '이것을 하라'거나 '이것을 하지 마라'는 가르침도 다만 인연에 따라 생길 뿐입니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씀하신 물처럼 순리에 따르는 삶이, 금강경에서는 부처님께서 특정 상에 집착하지 않는 삶으로 말씀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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