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싯다르타.

 

단숨에 읽었다. 데미안 등 원래 헤르만 헤세동양의 종교 및 불교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많다고 들어왔었다.

 

읽고서도 역시 대단하다.. 독일인으로서 동양의 종교인 불교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읽기 전에는 당연히 부처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였다.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전 이름이므로. 

 

그러나 소설 속에서 '싯다르타'주인공의 이름이며, 부처'부처' 또는 '고타마'로 표현된다.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 전 이름이 '고타마 싯다르타'인데.. 헤세가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소설속에 자연스레 녹여 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용은 "불교"의 "윤회"를 바탕으로 한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에 대한 갈망으로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집을 나온다. 그리고 더 나은 스승을 찾아 떠돌다 '부처'를 만난다. 그는 부처에게 탐복하지만, 다시 순례를 계속한다. 그리고는 가보지 않은 길,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며, 속세에서 사업을 하고, 사랑을 한다. 싯다르타는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알'던 자신의 모습을 잃고, 일반 세상사람들과 같이 돈, 음식, 재화에 탐욕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카밀라 사이에서 아들이 생기게 되고, 방황하는, 어리석은 아들을 보며 아버지로서 가르침을 주려하지만,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떠난다. 깨달음을 얻기 전 싯다르타가 그러했듯이.

 

윤회, 인과응보의 내용이 느껴지고, 소설 초반에 '부처'를 만났으나 싯다르타는 한참 순례, 방황을 한 이후에야 깨달음을 얻게 되고, '부처'를 만나 그를 따라간 '고빈다' 역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등 결국 깨달음은 스스로 겪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것인가.

 

읽고 나서 이미지로 뇌리에 박힌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바로 '싯다르타'가 '부처'를 처음 본 순간의 묘사다.

 

"그의 얼굴과 그의 발걸음, 그의 조용히 내리깐 눈길, 그의 얌전하게 아래로 내려뜨린 손, 그리고 얌전하게 아래로 내려뜨린 그 손에 붙어 있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모두 평화를 말하고 있었고, 완성을 말하고 있었으며, 무언가를 구하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모방하지도 않았으며, 결코 시들지 않는 안식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빛 속에서, 결코 깨뜨릴 수 없는 평화 속에서 부드럽게 숨쉬고 있었다."

 

헤세는 불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우쳤던 것이기에 이런 묘사를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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