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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손 트는 것을 막는 약은 한 가지인데, 한 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고, 다른 쪽은 무명 빠는 일밖에 못했으니, 똑같은 것을 가지고 쓰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게 아닌가? 자네는 어찌하여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동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즐길 생각을 못 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만 걱정했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려.

 

혜자가 장자에게 다섯 섬들이 박이 물을 담았더니 너무 무겁고,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깊이가 너무 얕아 쓸 수 없다고 한탄하자, 장자가 반론하는 내용이다. 옛말을 따르면 '쓸모없음의 더 큰 쓸모(無用之大用)'이라 할 수 있고, 현대 경영학에 따르면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상식적인, 또는 우리를 옭아매는 관습 등에 얽매여 "박"을 물을 담거나 바가지로만 본다면, 큰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장자는 그런 상식,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절대 자유이며, 그럴 경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더 큰 지혜에 다다를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14.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하네. 그 큰 줄기는 뒤틀리고 옹이가 가득해서 먹줄을 칠 수 없고, 작은 가지들은 꼬불꼬불해서 자를 댈 수 없을 정도지. 길가에 서 있지만 대목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네. 지금 자네의 말은 이처럼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걸세"

장자가 말했습니다. " ... 이제 자네는 그 큰 나무가 쓸모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고을' 넓은 들판에 심어 놓고 그 주위를 '하는 일 없이(無爲)' 배회하기도 하고, 그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게. 도끼에 찍힐 일도, 달리 해치는 자도 없을 걸세. 쓸모 없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지 않은가?"

 

앞에 내용에서 이어져, 혜자는 장자에게 장자가 하는 말들이 너무 허황스러워서 쓸모가 없다고 반박한다. 역사에서 어떤 선구자들이 행동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냈을 때 그들을 비웃던 주변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 혜자에게 장자는 다시 한번, "발상의 전환"을 권한다. 쓸모가 없으니, 목수에게 베일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으냐고 말이다. 혜자가 무릎을 탁 치는 장면이 상상된다.^^

 

1편 소요유(逍遙遊 )를 다 읽었으며, 내일부터는 2편 제물론(齊物論)을 읽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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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는 한껏 날아야 겨우 느릅나무나 다목나무에 이를 뿐이고, 어떤 때는 거기에도 못 미쳐 땅에 내려 앉고 마는데, 구만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다니." ... 매미나 새끼 비둘기 같은 미물이 어찌 이를 알 수 있겠습니까? 조금 아는 것(小知)으로 많이 아는 것(大知)를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小年)으로 긴 삶(大年)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구자나 천재들은 그 성과가 증명되기 전에 일반인들로부터 핍박받고,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나 보다. 나무와 나무를 이동하는 매미나 새끼 비둘기가 구만리를 나는 붕鹏에 비해 안 좋다는 것이 아니고, 둘 사이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는 구별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것은 이상하거나 틀린 것이 아니다. 나의 현재 지식과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항상 겸손하고,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발현시키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할 것이다.

 

7. 지인至人은 자신에 집착하지 않으며, 신인神人은 공적에 무관하고, 성인聖人은 명예를 탐내지 않습니다.

 

지인, 신인, 성인은 절대 자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은 자기자신에 집착하고, 공적에 목 매고, 명예를 탐내므로, 자기ego, 공적, 성공, 명예에 구속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10. 신인神人은 그의 덕으로 온갖 것과 어울려 하나가 된 것이오. 세상이 모두 평화를 바라는데, 무엇 때문에 구태여 노심초사하며 애쓸 필요가 있겠소?

 

신인神人은 '온갖 것과 하나가 된' 상태로 만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물처럼 흐르듯 살기 때문에 구태여 나서서 뭘 한다고...자기를 과시하고, 공적을 치하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려하고,,,설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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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에 이어, 오강남 선생님이 풀이하신 "장자"를 읽기로 결정하였다. 하루에 20페이지 정도씩 읽어 한달 내에 완독할 계획이다.

 

대학생 시절, 한자에 자신이 있었어서, 한문학과의 수업을 교양으로 많이 수강했었는데, 당시 수업에서도 "장자"의 구절들이 많이 나왔었고, 엄청난 스케일이었다는 기억이 지금도 흐릿하게 남아 있다. 또한 이전의 오강남 선생님이 풀이하신 도덕경을 너무 감명깊게 읽었기에, 장자 또한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노자와 장자를 도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뽑는데, 노자의 "도덕경""장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머리말에서 이에 대해 설명한다.

 

노자가 도를 주로 생성 변화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궁극적인 귀착점이라고 강조한 데 반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근원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그 변화에 몸을 맡겨 함께 흐르거나 그대로 변하기를 더욱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도덕경』은 주로 도의 '생(生)'하는 측면을 말하였는데, 『장자』는 도의 '화(化)'하는 기능을 부각한다.

 

내편 제 1편 소요유(逍遙遊)

"절대자유"의 경지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변화"와 "초월"에 대해 이야기 한다.

 

1.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鲲)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하였습니다.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거나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타고" 날듯이 모두 자연 안에서, 그것에 순응하고 힘입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초자연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래적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발현해서 생긴 일임을 말한 셈이다.

 

뽐내려 높이 날려고 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 안의 특성을 따라 큰 날개를 띄우기 위해, 자연에 따라 회오리 바람이 불 때 큰 바람을 타고 높이 난 것이다.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에 대한 순응이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또한 "화(化)"의 관점에서 곤鲲과 붕鵬이 원래 하나였음을, 따라서 자신 안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안에 자신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억지로 자기가 아닌 다른 모습을 따를 것이 아니라, 자연에 따라 자신 본연의 모습, 그것을 발현시키라는 말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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